연평해전

문화생활 2015/07/19 21:27 by 돌베개
영화 <연평해전>, 2015

영화 <연평해전>, 2015 한상국 상병, 조타실에서 방향타를 놓지치 않아~


우리 바다를 지키다가 장렬히 산화한 6용사의 희생 정신을 알아야 하지 않겠나 싶어 이 <연평해전>을 가족끼리 단체 관람을 하였다. 
남들은 유신시대의 반공영화처럼 정치적 쇼라고 매도하는 이도 있다.하지만 13년이 지난 지금 나는, 우리는 죄책감마져 느끼게 된다. 그토록 월드컵에 열광을 하여 연평도에서 해전이 일어났다는사실을 몰랐다가 나중에 뉴스를 접해보고 깜짝 놀라 뒤늦게 가슴이 메어 왔었다.당시 김대중 정부에서는 이 사실을 매우 축소를 하고 쉬쉬했다.
또한 김대중 대통령은 다음 날 영결식에 참석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는 결승전이 열리는 일본 도쿄로 향했다.
한 국가의 대통령이 맞는지 의심스러운 일이었다. 

한상국 중사는 허리 관통상을 당하고도 끝까지 방향타를 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시신은 41일만에 참수리호 조타실에서 방향타를 단단히 움켜진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사실 이 영화는 촬영조차 힘든 영화였다. 진보,좌파 코드의 영화가 많이 나오는 영화계에서 배우나 스테프 등 부담되고 힘든 제작현실을 인정해야 했다.13년에 시작한 영화는 첫번째 위기가 왔었는데 주연배우의 하차, 배우 전원의 하차였다.
제작비가 없어 여러번 촬영이 연기가 되었고 굴직한 대형 투자회사들은  이 영화만큼은 투자를 하지 않았다. 애국영화는 흥행이 안된다는 뜻일 것이다. 결국 스케쥴을 이유로 배우 전원이 하차를 해서 영화 자체가 위기가 온 것이었다.
그 때 제작직은 모금을 통해 다시 새로운 배우들과 영화촬영을 하게 되었고,  IBK기업은행 등이 거금을 투자를 하여 NEW에서 배급을 해줘서 다행이 영화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돈이 없어서 포기했던 생생한 장면 등을 찍을 수 있었다.

감동은 잠시지만 역사는 영원하다.

2015/07/19 21:27 2015/07/19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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